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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마지막 황제 (1987) & 비정성시(1989)

Naturis 2019. 6. 13.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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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묵혀둔 영화 두편을 봤습니다.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1987)와 비정성시(悲情城市: A City Of Sadness, 1989)... 1980년대말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이고 20세기의 중국과 대만을 각각의 배경으로하는 영화들입니다. 

왜 아직까지 못봤다면.. 둘다 유명했고 개봉할 때(저 중고등학교때)부터 대략의 스토리와 배경을 알고 있어서 봐야지 하고 생각만 있다가 미루고 미루다 거의 30년 지나서 보네요 ㅎ.. 아, 내 나이.. ㅠㅠ

두 영화다 중국과 대만의 현대사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거나 이해했다고 볼 수 없는 영화입니다. 특히 비정성시는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죠.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감독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라고 영화 웨스트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 : 찰스 브론슨의 하모니카 부는 복수극)로 유명하며 이전에 제가 포스팅하기도 했네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 1972)도 그의 작품이죠. 몇 년 전인가 주연인 말론 브란도에 관해 그 영화로 미투같은게 폭로되어 이슈가 되기도 했죠. 

마지막 황제는 당시에 아카데미상을 여럿 수상해서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OST까지 유명했는데 어린 황제 푸이가 자금성안에서 문무백관 앞에 나서는 장면에서 음악이 나오는 장면이 특히 유명합니다. 

스토리는 원작인 《황제에서 시민으로(From Emperor To Citizen)》으로 처럼 어린 마지막 황제 푸이가 혁명과 전쟁의 중국 현대사를 겪어 마지막엔 일반 시민의 얘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서태후 치하의 망국의 청말기에서 신해혁명과 군벌전쟁, 국공내전기 그리고 일제의 만주국까지 명목상 황제에서 중공의 일반 시민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시대 배경입니다. 

재밌는 건 배우들 대부분의 대사가 영어라는 것... 간간히 일본어 나오긴 합니다만.. 

그냥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중국 현대사를 대략이라도 알고 보면 유익한 영화입니다. 

 

 

비정성시(悲情城市)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비정성시는 유명하지만 영화 쫌 본 사람들에게만 유명한 그런 영화고 아카데미상은 아니지만 여러 국제 영화를 수상했어요...  

비정성시는 어쩌면 영화내용보다 젊은날 양조위가 출연해서 유명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국공내전 막바지 중국국민당이 본토에서 완전히 철수하기 직전인 1947년 228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비정성시의 시대상황은 오히려 중국 본토보다 잘 모를 수 있고 중간중간에 낯선 이름과 날짜등이 나와서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위에서 말한 228사건이 뭔지 모르는 분들이 많고, 중간에 918 숫자라던가 천이(陳儀)란 인물을 욕한다던가.. 등.. 

대략 시대적으로 918사건은 우리에겐 만주사변(滿洲事變)으로 잘 알려진 1931년의 9·18 사변을 말합니다. 일본이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게 되고 직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세워지고 허수아비 황제인 푸이가 옹립되었으니 앞의 영화 마지막황제와도 살짝 연이 닿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비정성시에서는 대만인들이 과거의 918 사건에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살짝 나옵니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인 228사건은 1947년 2월 28일 촉발된 대만판 제주4.3사건이라고 하면 "살짝" 비슷할 것도 같습니다. 본토에서는 막바지로 장개석이 중공군과 싸우고 있고 곧 철수하게 될 대만에서는 일종의 군정과 민정 사령관을 겸한 천이(陳儀)란 인물이 통치하고 있었는데 중국 본토인(외성인)과 대만인들(내성인 또는 본성인) 등의 차별과 갈등, 부정부패 그리고 장개석 군대의 본성인 학살이 대략적 사건입니다. (학살은 명목상 친일파와 공산당 처벌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참고로 내성인(본성인)은 오래전에 주로 명청교체기 정성공의 난 이후에 본토에서 일찌감치 대만으로 이주한 사람들과 원래 있던 극소수의 원주민들을 합쳐 말하는 겁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란 책에서 대만원주민들이 인도네시아, 멜라네시아 등의 원주민과 유전적으로 비슷하다고 했던 것 같은 기억이 살짝 나는데 확실치는 않네요 ㅎ)

아무튼 그때 228사건으로 외성인이 주로 지지하는 국민당과 본성인이 주로 지지하는 민진당으로 이어지는 현대 대만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크나큰 사건이라고 보면 됩니다. 당연히 외성인은 친중국, 본성인은 친대만독립입니다(친일적이기까지도 함).. 특히 본성인이 많고 저항이 심했던 대만 남부에서 민진당 지지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228사건 즈음의 대만 현대사에서 임가의 4형제가 겪는 불행한 상황을 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같이 다들 불행하게 되죠. 228사건이 배경이라고 해서 시위라던가 대규모 폭력사태를 직접적으로 그리지는 않고 멀찌감치 물러서 임가 주변에서 무심한 듯 바라보는 카메라와 담담하게 비극을 이겨내가는 임가 패밀리의 상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배경이 되는 도시는 지우펀이라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의 그 이상한 마을을 연상해 그린 그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풍등 날리기로도 유명한 그 곳입니다. (작년말 대만에 갔을 때 시간상 지우펀엔 못갔네요 ㅠㅠ 다음에 대만에 가면 지우펀엔 꼭 가게 될 것 같네요. )

왜 이 영화에서는 228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없을까하는 생각을 해보면 영화가 막 만들어진 시기가 대만이 겨우 228에 대한 복권이 시작되고 조금씩 말할 수 있게된 초기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특이한게 이 영화속에는 일제에서 독립한 당시 대만의 1947년에도 일본인이 더러 보인다는 겁니다. 우리의 광복 2년후에 일본인이 있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데요(그만큼 대만은 일본에 대해 우리만큼 적대적이지 않다는 거죠. 그런 상황에 기름의 불을 지른게 국민당의 228사건이었고요.. 일본인보다 외성인이 더 미울수밖에.. 이런 저런 이유로 대만에 친일적 사고가 많이 남아있고 일본풍이 여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만에 여행가서 돌아다니며 딱 드는 생각이 중국분위기와 일본분위기가 섞여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겁니다. )

 

 

결론... 

저는 비정성시가 마지막 황제보다 훨씬 좋은 영화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절제와 생략이 효과적으로 잘 된 영화라고 보여요.. 여운도 많이 남고요... 저는 특히 여운 남아 곱씹어 보게되는 영화를 좋아하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 황제도 좋은 영화지만 여운이 남는 그런 영화는 아닙니다. 

두 영화 혹시 못 보셨으면 추천합니다. 특히 비정성시.... 양조위 좋아하시는 분은 더더욱.. 

한가지 빼먹은게 비정성시의 영화음악도 아주 좋습니다. 절제된 비극을 절묘하게 살며준다고나 할까요.. 

- 마지막 황제 OST : https://youtu.be/MI5DyZXcHVI

- 비정성시 OST : https://youtu.be/61q7nBITq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