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산 바다

10여 년 만에 북한산에 오르다(2009년 10월 10일)

Naturis 2009. 10. 1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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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다른 말로 삼각산은 백운대와 인수봉, 그리고 만경대가 삼각을 이루어졌다고 해서 부르는 이름이라고 한다.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어 오다가 오늘 10여 년 만에 북한산에 다시 찾았다. 북한산에 가지 않으려 한 이유, 먼저 한강 이남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교통편이 그리 수월한 편은 아닌지라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버스를 타려 해도 두 번은 갈아타야 하고, 지하철을 타려 해도 마찬가지로 여러 번 갈아타야 한다. 그보다도 등산배낭 차림에 지하철 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다 핑계다. ㅋㅋ

오늘 산행도 사정이 생겨 또 포기할 뻔 하다가 정오가 되어서 부랴부랴 출발할 수 있었다. 버스안에서 비틀즈의 “Devil in her heart”들으면서 그녀에 대한 생각을 곱씹으며 두 번이나  갈아타고서야 1시반 경 정릉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는 경북 청송(주왕산과 교도소 정도 밖에 모르다)에서 사과 하나씩을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집에서 준비해온 사과도 있고 해서 산행 중 맛을 보지는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 먹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오호… 꿀맛이었다. 파삭파삭하지도 않고 맛이 싱그럽다고 할까 어머니도 맛이 있다고 좋아하셨다. 좀더 얻어 올걸 그랬다. 이 정도 청송사과 홍보면 사과 한 개 값은 충분히 했으리라. (근데 정말 맛있었다) 어쨌거나 그 사과를 이게 왠떡이냐 싶어 받아들고 본격적으로 산으로 들어섰다.

 


오늘 코스는 “ 정릉입구 –> 보국문 –> 대동문 –> 동장대 –> 용암문 –> 위문 –> 백운대 –> 위문 –> 용암문 –> 도선사 –> 우이동 “ 이다. 사실 오늘 코스라고 할 것도 없다. 10여 년 전 또는 그 전에도 오늘 코스와 비슷하게 왔기 때문이다. 등산을 좋아하면서도 자주 가지 않았었기 때문에 코스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냥 교통편한 곳으로 들어가서 정상만 갔다오면 만사오케이였던 시절이었다. 지지난 달 8월부터 매주 관악산에 오르내리면 코스 답사하는데 재미를 느꼈고 이제 눈을 돌려 북한산에도 조금씩 남들이 말하는 “코스”라는 것을 밟아보려한다. 물론 북한산도 홀로 오르려고 한다. 힘들여 산에 오르려는 친구들도 없고, 산악회같은데는 가입하기도 싫다. 천성이 원래 몰려다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홀로 아니면 두서명이 오붓이 가는게 역시 좋다.

 

<오늘 코스의 첫 관문이 보국문>

이전에 북한산에 오를때에 보국문까지 힘들게 올랐었던 기억도 있고 시간이 오후라 좀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에 김밥하나만 사가지고 발을 재촉했다. 오후라서 내려오는 사람만 있고 올라가는 사람은 그다지 볼수가 없었다. 더구나 내려오는 코스로 이쪽 정릉쪽을 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였다. 보국문은 이렇게 쉬었나 할 정도로 너무나 쉽게 빨리 올라간듯 하다. 아무래도 매주 관악산행이 도움이 됬었나 보다. 쉴사이도 없이 북한산 성곽을 따라 대동문, 동장대, 용암문으로 조금씩 이동하였다. 성곽에서 바라보니 서울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는데 날씨까지 좋아서 오늘 제대로 북한산에 제대로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국문에서 대동문방향으로 가능방향의 성곽>

 

<가을 북한산은 조금씩 붉게 물들고 있었다>

대동문은 아직 보수공사라 한동안은 제대로된 모습을 못 볼것 같다.

북한산의 큰 단점이 있으니 등산인들의 주 코스인 북한산성 능선에서 백운대 가는 길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쇠 밧줄이라도 잡고 가야 하는 곳에서는 길게 사람들의 줄이 쭉 늘어서기 일쑤다. 백운대 위문앞에서 백운대 정상까지는 쇠 밧줄 한 두 라인에 올라가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서로 병목하여 내가 산에 온건지 사람보러 온건지 착각이 들 정도다. 오늘 코스에서 원래 위문 옆 만경대에도 오르려 했으나 그 곳은 범인들이 오르는 곳이 아닌 듯 했다. 자일(등산 밧줄)이라도 둘러멘 사람들이 갈 곳인 듯 하다. 어차피 난 자일 둘러멜 일은 없다. 한 번 실수로 저 세상 가고 싶진 않다. ㅋㅋㅋ 
  

<동장대>

백운대 정상까지 한 번도 앉아보지도 않고 길을 갔기에 2시간 걸려서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들로 정상길이 밀리지만 않았다면 훨씬 단축되었을 터였다. 백운대 정상에서 인수봉을 보니 오늘도 열심히들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어릴적 등산하다 죽은 사람의 십중팔구는 인수봉에서 사고가 난 것인데, 요즘은 그런 등반사고 뉴스가 별로 안들리는 걸 보니 안전장비가 좋아진 건지, 산에 안전 장치가 보강된 것인지, 아니면 암벽 등반인들의 실력이 좋아진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뉴스에서 보도를 금지하는 것인지… –_-;

 

<용암문>
 

<위문 :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있다. 왼쪽이 백운대, 오른쪽이 만경대>

 

<백운대를 내려가는 사람들. 이런 쇠밧줄 한둘을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모두 의지해야 한다>


< 백운대에서 바라본 만경대. 백운대 바로 옆에 있으며 삼각 중 하나다. 이 위치에서 왼쪽으로 90도방향 쯤에 인수봉이 있다. 이곳 백운대와 만경대, 인수봉이 삼각을 이루어 삼각산이라 부르는 것이다 >

 

<백운대 정상 태극기 옆에서 인수봉을 바라보며… 정상이 사람들로 넘친다. 외국인들도 보이고..>

 

<백운대 정상에는 변함없이 매일같이 휘날리는 태극기… 그냥 국기봉이라고 부르면 안될까? ㅋㅋ 근데 왜 산 정상에는 태극기를 달아야하고 우린 왜 이걸 당연한 걸로 여겨야 하지? 새삼스레 의문이 생겼다. 여기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을 확실히 해두자고? 아니면 산에 올라서도 애국심을 간직하라고? 산은 그저 산일뿐인데 왜 저런걸 박아놓는지 모르겠다. 나이들어 생각이 굳을 대로 굳으신 어르신들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백운대 정상에서 몇 미터 밑 구석에서 산아래서 사가지고 온 김밥을 먹고 다시 하행길을 재촉했다. 위문을 지나 다시 보국문 방향으로, 아뿔싸 원래는 위문 북쪽방향을 해서 우이동으로 내려오려 했는데 아무런 생각없이  왔던 길로 되돌아 가고 있던 것이었다. 왔던 길로 다시 가는 건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기에 왠만하면 그 길을 다시 가지는 않는 터였다. 다시 위문으로 갈 수는 없고 어쩔수 없이 용암문에서 우이동쪽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도선사 길로 내려가는 중에 곧게 서있는 특이한 바위들을 보니 金尙宮淨光花之舍利塔(김상궁정광 화지사리탑) 이라고 써있고 同治癸酉十月日立(동치계유시월일립) 이라고 옆에 세운 날짜까지 써있다. 일명 김상궁바위라나 뭐래나 조선 19세기 말 김상궁이라는 궁녀의 사리탑이다. 그 당시에는 일반인들도 사리탑을 만들 수 있었단다. 세운 날짜에 同治는 청나라 목종 때의 연호(1862~1874)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 당시 癸酉(계유)년이면 신미양요가 1872년이니까, 1873년은 계유년이 된다. 즉, 1873년 음력 10월에 사리탑을 세웠다는 말이 되겠다.


*등산 관련 포스팅*

오늘 쉬지 않고 백운대에 오른게 좀 무리가 됬는지 허리가 조금 아팠다. 나도 이제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섰는데 몸 생각해서 쉬면서 올라가야겠다. 그러나, 오를때 마음과 몸은 날라갈듯만 했건만… 역시 세월을 이기는 것은 없는 것인가…

오늘 코스를 관악산과 비교하면 산은 높으나 힘들지는 않다고나 할까, 반면에 관악산은 산은 낮은데 좀 더 가파라서 산행을 휘몰아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직은 북한산 코스를 잘 모르니 뭐라 말하기엔 이르다. 다음기회에는 북한산 서쪽 또는 북서쪽 코스로 돌아볼까 생각중이다. 그나저나 SLR은 바라지도 않고 컴팩트 디카라도 하나 구해야 할 듯 하다. 역시 핸드폰 카메라로서는 한계가… 그래도 이만하면 잘 찍었다며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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