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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까마귀 기르기(Cría Cuervos, 1976)

Naturis 2020. 5. 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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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영화 <까마귀 기르기>(Cría Cuervos, 1976) 입니다. 

요즘 연식있는 명작을 자주 보고 있고 그 중에 스페인 영화를 꽤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만큼 스페인에 좋은 영화가 많아서 그럴 겁니다.. 

제목 부터가 좀 특이한데 그냥 편하게 보면 이해 못 할 영화를 보는 내내 좀 난해하다고 느낀 영화입니다.. 거의 보고나서 곱씹어보고 찾아봐야 많은 부분이 이해되는 점도 있구요. 

까마귀 기르기(Cría Cuervos)란 말은 스페인 속담 "Cría cuervos y te sacarán los ojos" 에서 온 것입니다. 직역하면 '까마귀를 기르면 네 눈을 쪼을 거다'는 것이며 (주로 키운 자식들이 부모에게 하는) 배은망덕을 의미하기도 하고 뿌린대로 거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제가 본 스페인 영화중에서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의 영화들이 많은데 대부분 프랑코 독재정권시대의 영향이라고 보면 다 맞더군요.. 이 영화도 딱 배경이 프랑코 정권말기이고 보다보면 이 영화는 프랑코 정권치하의 느낌이 묻어나는 영화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프랑코 정권은 스페인 내전후 프랑코가 사망할 때까지의 기나긴 독재 파시스트 정권입니다. 마치 박정희 정권을 보는 듯하죠.. 실상은 훨씬 더 길었습니다. .1939~1975년 말까지... 이러니 스페인 영화가 암울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영화 <까마귀 기르기>는 엄마가 죽고 환상과 현실이 불일치된 세상을 보는 어린아이 아나의 심리를 다룬 영화입니다. 

 

대략의 스토리는... 

"암으로 죽은 엄마. 

엄마가 죽고 얼마후 상처한 아빠가 친구의 아내와 밀회를 갖다 심장마비로 죽고 그 방문을 도망치듯 나오는 여자와 아나가 마주쳐 눈빛을 교환하지만 서로는 그냥 아무일 없다는 듯 넘어갑니다. 그리고 아나는 아버지의 주검 옆 우윳잔을 깨끗히 헹궈 다른 빈 잔 속에 섞어 놓습니다.

고아가 된 자매들은 말못하는 불구의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다소 권위적인 이모와 함께 살게 됩니다. 

아나는 죽은 엄마가 자신을 돌보는 환상을 보기도 하고 자신이 자살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며 외할머니에게 자살을 도와줄까 물어보기도 합니다. 거기에 애완동물까지 죽습니다. 

과거 회상에서 엄마가 살아있을때 아나는 군장교인 아빠의 불륜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어린 아나의 행동을 성인이 된 아나(엄마와 동일 배우)가 가끔 나타나 변명하듯 어린시절을 회상합니다. 

어린 아나는 자신을 돌보는 권위적인 이모가 죽기를 원해서 우유에 (아나에게는 코끼리도 죽일만큼 강력한 치사량의 독이라고 생각되는) 미스터리한 하얀 분말을 타서 마시게하고 증거인멸하는 듯 씻어냅니다..  물론 이모는 안 죽음..  그 하얀 분말은 실상은 실상은 베이킹 파우더 종류입니다.

처음 영화 초반엔 아나가 죽은 아버지 옆에 놓인 우윳잔을 왜 씻어서 다른 잔에 섞어놓나 의아해 했었는데, 이 영화 마지막에 이모가 (아나가 독분말을) 탄 우윳잔을 마시고나자 아나가 그 잔을 씻어 빈 잔 속에 섞어 놓는 장면이 다시 나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아나에겐 증거인멸 같은 행동같은 거라는 것을..  

엄마가 고통받고 죽은게 아빠 탓이라고 생각해서 (독이라고 생각하는 비밀의 파우더를) 아버지에게 먹이고 그 증거가 있는 우유잔을 씻어 증거인멸하려 했던 거죠. 물론 아버지가 그 마신 독이 든 우윳잔은 무해한 것이고 사인은 자신의 친구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다 심장마비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모도 안 죽죠.. 아빠의 죽음 직후 아나는 그 불륜녀를 보았다는 얘기를 안 합니다. 자기땐엔 아빠를 자신이 살인했고 그걸 들켰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듯..

이렇게 이모를 죽이는데는 실패하고 현실은 방학이 끝나고 자매들은 마드리드 시내를 걸어 학교에 가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

 

 

제가 설명을 우유에 독이나 타서 사람 죽이려는 아이같이 써놨으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철부지 아이일뿐 영화가 공포스럽거나 그런건 전혀 아닙니다. 사람 죽이려는 사악한 아이 이런거 아니구요..  ㅋ

제 분석에 군장교인 아빠와 권위적인 이모는 프랑코 정권을 상징하고 암으로 죽은 엄마는 프랑코 정권이 무너뜨린 민주적인 공화정권 또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합니다. 불합치한 현실을 보는 아나는 스페인 민중을 상징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 아빠와 이모는 공통적으로 아나가 주는 독(이 든걸로 착각한) 우유잔을 마시게 되죠.. 한명은 죽었지만 착각이었고 다른 한명은 안 죽었지만요. 죽은 것 같은 독재자는 죽인게 아니었고 또다른 독재자는 죽이지도 못했다.. 독재가 끝나든 안끝나든 권위주의는 살아있는게 엄연한 현실이다...고 억지 해석을.. ㅋ ) 

어쨌든  <까마귀 기르기>의 감독 카를로스 사우라 (Carlos Saura)는 프랑코 정권에 반대하는 감독이었다고는 합니다. 실제로 영화가 프랑코가 죽은 다음해인 1976년 개봉하기는 했지만 영화 촬영은 한 해 전 프랑코가 살아있던 1975년 여름에 촬영했다고... 

정치적이고 심리적인 이 영화에서 정치적인 관점을 쫙 빼면 그냥 어린아이 성장과정의 성장통 쯤으로 끝날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2006년작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El Laberinto Del Fauno, Pan's Labyrinth)가 연상이 되긴 하더군요. 그 영화는 더 기괴하고 암울하고 슬프기까지 했죠.. 공통점은 아이들이 보는 상상의 세계와 현실 세계의 불일치.... 그리고 프랑코정권을 비판한 영화라는 점... 

그리고 두 영화 다 음악이 좋다는 점.. 

<까마귀 죽이기>에는 스페인 가수 Jeanette의 노래 "Porque te vas"  ("Because you are leaving"의 의미)가 삽입되어 있는데 떠나간 연인에 대한 원망이 가사에 들어있습니다. 아나가 엄마를 생각하며 자주 듣고 자매들이 춤추는 노래죠. 
그런데 이 노래를 프랑코 정권 말기와 관련되어 분석되기도 하더군요. 노래속 이별이 독재자 프랑코의 죽음후 독재정권의 붕괴를 상징한다고. 굳이 끼워맞추면 그럴것도 같긴 합니다만... 

아무튼 독특하고 별나고 아이들의 연기가 좋은 영화.. 아이들 나온다고 절대 아이들 영화는 아니고 아이들은 영화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추천합니다~ 좋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