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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소련판 431분 <전쟁과 평화> (War And Peace, 1967) vs 허리우드판 208분 <전쟁과 평화>(1956)

Naturis 2020. 7. 2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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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려고 맘만 있지 감히 볼 엄두가 안 나던 장편 영화 <전쟁과 평화>를 드디어 봤습니다. 물론 하루에 다 본 건 아니고 사흘에 걸쳐서 봤습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이름은 익히 들어봤던 작품이고 TV에서도 몇번 방송해줬던 것도 같은데 제대로 본적은 없었거든요. 채 몇 분도 못 봤던든...

이 영화 <전쟁과 평화>는 1967년경에 소련에 만든 것이 무려 431분 분량에 4부작으로 각기 해를 걸러가며 개봉했던 작품인데 이왕 소련판을 본 김에 그 전에 허리우드에서 1958년에 개봉했던 것도 봤습니다. (톨스토이 원작소설을 각색해 만든것인데 영화와 드라마로 많이들 만들었어졌죠. )

절대절대 원작소설을 읽을 생각은 없습니다. 비록 431분의 긴 상영시간이지만 소설 읽는 것본단 나으리라는 생각에이었고 원래 소설읽기는 포기한 지 오래고 대신 영화를 찾아 즐겨보는 편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소련판 <전쟁과 평화>를 중심으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뒤에 허리우드판도 간단히 소개하면서 소련판과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소련판 <전쟁과 평화> 1967년작 (총 4편으로 구성)

 

 

구소련에서 1967년부터 차례로 4편이 개봉했던 <전쟁과 평화>는 세르게이 본다르추크(Sergei Bondarchuk) 감독이 만든 대작입니다. 영화 길이도 대작이고 스케일도 대작이죠. 총 4편으로 된 총 431분 짜리 영화니 정신차리고 봐야했어요. 혹시라도 지루함을 느껴 중도포기할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다 봤죠. 

동명의 톨스토이 원작소설을 각색해 영화로 만든 것이고 당연히 러시아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시대 배경을 보면 나폴레옹이 유럽을 휩쓸고 제정러시아마저 침략했던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첫번째 전투는 오스트리아에서 반나폴레옹 연합군과 나폴레옹군의 대결, 두번째는 나폴레옹 연합군의 러시아 침략)

기본 스토리는.. 소설을 안보신 분이고 앞으로도 안 볼 분들을 위해 대략 설명해 봅니다. 소설을 안 읽고 영화와 구글링으로 아는 거지만 대략 맞을 겁니다. 등장인물을 설명하면 스토리 가닥이 보이니 그 방식으로.. 세 인물이 주요 등장인물인데 그들만 설명하면 될 겁니다. 

안드레이 (공작 prince).  전직 군사령관이었던 아버지가 공작(prince)이라 안드레이도 공작 신분을 상속함. prince는 왕자가 아니고 공작이란 뜻도 있음..  러시아군 예비대 지휘관. 책임감있고 일에 충실하며 냉철하나 가정엔 소홀한 스타일. 세상사에 회의적임. 사랑에 열정적이지 않은 편. 오스트리아에서의 나폴레옹군과의 전투후 부상후 실종되었다가 모스크바 집에 돌아왔으나 바로 아내의 죽음을 목도함(출산중 사망). 이후 어린 소녀 나타샤에게 반하지만... 

피에르 (백작 count). 안드레이의 절친임. 베주코브 백작의 사생아인데 백작인 아버지가 죽으면서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음. 뚱뚱한 체구에 매력적인 외모와는 거리가 멈. 지적이지만 소심한 성격에 우유부단. 쭈뼛쭈뼛이란 표현이 맞을 듯. 작가 톨스토이 자신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함. 친구의 약혼자(나타샤)을 사랑하는 걸 보면 여러 여자를 사랑했던 톨스토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돈을 노리고 접근한 쿠라긴 가(家)의 헬렌과 결혼하나 사랑은 없음. 헬렌이 장교 돌로코프와 사귄다는 루머가 있고 이 루머로 피에르는 돌로코프와 결투를 하게되나 총한번 못쏴본 피에르가 천운으로 결투에 이기고 돌로코프는 부상당함. 이후 헬렌과는 별거. 친구 안드레이의 약혼자 나타샤를 사랑하나.. (참고로 헬렌역의 배우 이리나 스코브세바(irina skobtseva)는 감독이자 피에르 역을 연기한 세르게이 본다르처크 감독의 실제 아내임. 영화에서 키스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피에르가 안경을 벗으면 몽실몽실한 렌즈효과를 보여주는데 이런 시각효과가 여러번 쓰임. )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략을 겪으며 방황을 끝내고 정신적으로 성장함. 

나타샤 로스토바. 로스토프 백작의 딸. 춤과 노래를 좋아함. 순진 발랄 로맨틱한데 성격은 예민해서 쉽게 슬퍼하고 기뻐하고 쉽게 사랑에 빠짐. 안드레이와 사랑에 빠진 나이가 16세이니 철없을 나이긴 함. 안드레이와 사랑을 약속하나 안드레이가 한동안 모스크바를 떠나 있는 동안 기혼자이자 바람둥이며 헬렌의 남동생인 아나톨의 유혹에 꾀여 같이 외국으로 야반도주(사실상 납치)하려하나 실패하고 나타샤는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나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안드레이는 약혼은 끝이라고 선언... 좌절하고 후회하는 나타샤... 그리고 나타샤를 위로하는 피에르는 나타샤에게 사랑을 간접 고백. (나타샤를 보고 있으면 착한데 지나치게 예민하고 쉽게 흥분하는게 어려서 아직 그런걸껍니다.. 다행히 점점 정신적으로 성장해감.  톨스토이가 그리는 이상적인 여성이라고함.. )  나타샤 로스토바 정도의 이름은 알아두면 좋을 거예요. 러시아인이라면 다 알 정도의 소설속 이름이라고.. 

이후 나폴레옹군의 러시아 침략으로 안드레이는 전투에 참가하고 치명적 부상을 입음 (참고로 안드레이가 부상으로 막사에 누워있는중 침대 옆에서 부상으로 신음하는 정적 아나톨을 발견하고 눈빛 교환.. ). 이후 안드레이는 피난중인 나타샤에게 돌아가 나타샤의 간호를 받으며 나타샤에 대한 사랑을 느껴가나 결국 죽음. 피에르는 민간인 신분으로 전투를 목격하고 나폴레옹군의 포로가 되어 전쟁의 실상을 보게 됨.  

전쟁이 끝나고 피에르와 나타샤는 재회하고 사랑을 느끼는 것으로 종결... (실제 소설에서는 결혼까지 하고 여러 가문의 뒷 얘기가 있다고 함. 나타샤의 오빠가 안드로이의 여동생 마리아와 결혼하고 안드레이의 어린 아들을 키운다던가.. 피에르와 안드레이의 아들이 데카브리스트 난에 관련된다던가. ) 

 

초기 소설속 삽화로 그려진 어린 나타샤

 

431분을 총 4편으로 볼 수 있는데 주인공들 개인 얘기를 빼고 보면.. 

1편은 오스트리아에서 나폴레옹군과 러시아군이 참여한 반나폴레옹군과의 전쟁 그리고 귀족들의 호화롭고 방탕한 일상, 2편은 귀족들 얘기, 3편은 나폴레옹군의 러시아 침략. 거의 전쟁만을 다뤘다고 봐도 되고, 4편은 그 전쟁의 끝. 나폴레옹군의 패주(러시아 군에 진 건지 러시아의 겨울에 진 건지...).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결말..  이렇게 놔눌 수 있겠네요. 

사실 귀족들이 나오는 장면은 반부르조아적 시각에서 볼 수 밖에 없는게 귀족들이 하는 게 먹고 마시고 노는 것 뿐이고 그들의 고민거리도 그냥 봐도 배부른 소리하고 자빠졌네 싶은 것들 뿐이긴 하죠... 

참고로 나폴레옹군의 러시아 침략은 프랑스의 나폴레옹군만으로 구성된 게 아닙니다. 나폴레옹군이 동서유럽에서 여러 국가를 작살내고 만들어낸 위성국가나 동맹국가들의 군대도 같이 착출되어 침략해 온 것이구요. 프로이센, 작센,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의 군대도 같이 착출되어 온 것으로 영화에도 이건 뭐지 싶은 여러 나라의 병사 복장들이 등장해 피아를 구분하는데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긴 합니다..

 

대략의 스토리는 이러하고 이어서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뒷이야기와 느낌을 적어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소련판 <전쟁과 평화>는 원작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한 작품입니다. 

우선 배우들.. (맨 처음 포스터 3인의 인물이 안드레이, 나타샤, 피에르 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피에르... 감독 세르게이 본다르추크(Sergei Bondarchuk)가 피에르 역을 맞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 톨스토이의 생각을 대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감독이자 피에르 역의 배우가 나이가 좀 많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안드레이는 살짝 나이들어 보인다고한다면 감독은 좀 많이 들어보입니다. 게다가 이 대작영화를 7년 가까이 걸려 촬영했기에 나이관리가 쉽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겠어요 ㅋ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삽화에서의 피에르. 키 크고 덩치가 좀 있음.

 

피에르의 경우 꽤나 비만인데다 비미남형에 나이가 살짝 들어보이는 캐릭터인데 이건 원작이 그러합니다.

그렇게 보면 헐리우드판 전쟁과 평화에서의 피에르 배역(헨리 폰다)의 비쩍 마른 모습은 원작에서 한참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여자 배우 나타샤 역의 류드밀라 사벨레바는 소설속 나이보다는 몇 살 많긴하지만나 충분히 납득할 만하게 원작에 충실함. (영화속 첫 등장이 10대중반이었고 안드레이에게 사랑을 느낀게 16세이고..  하지만 어린 나탸샤의 순진(유치)발랄한 느낌을 배우가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실제 당시 어린 발레리나였던 배우경력이 전무한 류드밀라를 여러번의 오디션을 통해 발탁했는데 일부러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고른 거라고.. 이 발레리나란 경력은 영화속에 몇번 발휘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1956년작 나타샤 역의 오드리 헵번은 너무나 잘 알려진 배우였고 러시아인 느낌이 전혀 안나는데다가 상대적으로 성숙한 느낌이 들어서 소설속 순진발랄한 어린아이같은 느낌의 나탸샤를 표현하기엔 약간 무리가 있기도 합니다. 나이를 모르고 보면 상관없으나 원작을 알면 좀 무리...  )

이 영화의 단점으로 독백이 많아서 좀 지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소련영화 몇 작품을 보면서 느낀 건데 유난히 짧은 독백이 많습니다. 작품에서 작가가 써내려간 독백을 그냥 배우가 읽어나가는 느낌이랄까. 감독이 최대한 톨스트이의 생각을 구현하는데 노력했다고 하는데 자연과 인물의 관계를 같은 데서 톨스토이의 사상이 좀 들어나는 것 같긴 합니다. 독백이 잦은 건 원작 소설에서 그렇게 표현을 했다고 하더군요. (비러시아어로 번역되면서 그런 표현이 많이 삭제 또는 변경되었다고 하네요. )

게다가 장편이다보니 영화 초반 중반까지도 등장인물이 누가누구고 어떤 신분인지 잘 몰라서 헤깔리는데 소련식 이름에 적응해야 그나마 좀 낫습니다. 소설 내용을 알고 보면 영화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더군요. 

 

여배우 나타샤 역의 류드밀라 사벨레바. 눈동자가 초롱초롱한게 특징.. 

이 배우는 영화 해바라기에서 봤던 그 영화에서 아름다운 러시아인으로 나왔던 분인데 이 영화에서도 이쁘게 나옵니다. (제가 어릴때 영화 해바라기를 봤을 때도 저 배우는 참 이쁘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 뭐.. )  허리우드판 전쟁과 평화의 오드리 햅번의 미모와 비견될 만 하죠. 이 영화에서도 눈동자가 참 이쁘게 나오는데 그 눈동자로 나이브한 나타샤 역을 잘 표현합니다. 

배우의 연기가 순수발랄하고 좀 들뜨고 성격이 예민하고 쉽게 흥분하는 편인데(포악하고 그런 건 아니고) 원작 소설을 찾아보니 그렇게 표현되어 있다고 하네요 ^^;  다만 원작에서는 아주 이쁜 것은 아닌 것으로 표현되는데 반해 허리우드판이나 소련판이나 배우가 이쁜 건 공통점... 

아마도 감독은 톨스토이의 철학을 이 영화에 많이 구현하려 한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고 귀족들의 호화로움 삶과 전쟁시기의 피폐한 삶으로 변화, 이성적인 감정과 본능적인 감정의 대조, 속박의 과정에서 정신적 성장과 자유를 느낀다던가... 규율잡히고 체계적인 나폴레옹군과는 다른 무능해보이고 서툴러 보이고 신앙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러시아군을 비교하는 것을 보면 전체적으로 뭔가 이성적인 것들을 좋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 이성적 인간의 대표는 아마도 나폴레옹? 거기에 러시아의 광활하고 차가운 자연에 패배한 나폴레옹을 보면 자연과 합리적이라는 인간과의 관계도 보여주는 것도 같고.. 게다가 굉장히 철학적인 대사가 많아서 어찌보면 쉬운 영화는 아닐 수도 있긴 합니다. 

더나아가 (아마도 원작소설도 그럴 것 같은데) 이 영화는 러시아인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전쟁과 역사를 이끌어간 것은 개인이었다는 걸 일깨워주려는 의도도 있는것 같긴 합니다. 제정러시아나 황제에 대한 찬미같은 건 없고 오히려 개개인의 삶의 투쟁이 그려진다고 보는게 맞을 듯.. 

 

전쟁중 러시아 정교회 미사를 위해 모여드는 병사들

 

 

 

그런데 종교가 마약이었던 소련에서 비록 영화이지만 종교적 표현들이 아주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소련 영화치고는 꽤 열린 생각으로 감독이 각오하고 만든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종교적인 의식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습니다. 기도하고 성호를 긋는 장면은 수없이 나오는데 정교회의 성호 긋는 방법은 로마카톨릭의 방법과 약간 다르더군요. 종교적인 장면의 클라이맥스는 나폴레옹군과의 보르니도 전투에서 구원과 승리를 구원하기 위해 성물이 위치한 언덕으로 수많은 러시아 병사들이 모여들며 미사보는 장면은 장엄하고 스펙터클하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사람 많이 모이기도 쉽지 않거든요.. 그 장면이 이 영화이 최고의 순간중 하나라고 봅니다. 영화사에도 이런 엄청난 종교의식의 장면은 결코 없었던 듯 (참고로 허리우드판엔 그런것 없음)

-> 보르디노 전투 중 언덕에서의 정교회 미사 장면

이 영화 제작환경의 특이점이라면 소련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제작했다는 점입니다. 허리우드에서 개판친(?) 영화를 제대로 러시아인들이 러시아인의 관점에서 보다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보자는 각성에서 나온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허리우드판은 전혀 러시아분위기가 안나고 러시아인의 관점이나 톨스토이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죠) 정치적인 면에서보면 냉전시대의 군비경쟁과 우주경쟁을 넘어 영화에서도 그 경쟁심이 발휘되어 후르시초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1956년작 허리우드판을 보고 있으면 배경이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미국을 보는 느낌 조차 들거든요. 영어 발성은 둘째치고 배우들 느낌도 서유럽 느낌을 주는 건 어쩔 수 없고요.. 

소련식이 아닌 서구식 제작비 계산방식이라면 당연코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투여한 영화가 맞을 겁니다. (장기간의 걸친 거의 무료의 수많은 군중들. 소련 군대와 장비들. 그리고 귀족들의 무도회씬이 열리는 유명한 박물관 등을 장기간에 걸쳐 무료로 빌려 쓴 걸 생각하면 더더욱... 소련에서 돈 내고 찍었을 리가 없잖아요 ㅋ)

일단 전투씬에 등장하는 인원이 엄청나고 그 소품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전투 장비는 둘째치고 그 인원들이 입은 군복들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기에 모스크바에 대화재가 나는 장면(가상의 도시 세트임)도 정말 무지막지하게 불태웁니다. 이 장면은 영화 해설하는 비디오를 보면 무지막지하게 태우고 위험할 정도로 촬영해대고.. 

 

 

거기에 수백의 말과 수만의 군인들(한 전투씬에만 1만2천명~1만5천명)의 소련군이 엑스트라로 동원됬다고.. 그렇게 동원된 소련군들이 다시 훈련받아 참여했으니 영화에서도 정말 군인들처럼 착착 발맞여 움직일 수 밖에요... 그 인건비는 역시나 공산국가에서나 가능한 것이라 역시 소련스럽다고나 할까요. 영화속 전투장면을 보면 사각형의 대열로 정렬해 언덕과 언덕사이를 오가며 전투하는 장면을 멀리서 영상으로 잡은 걸 보면 흡사 모니터로 보던 전쟁게임(토탈워 시리즈같은)의 군대이동을 보는 듯 하고, 속이 빈 사격 대형의 보병들이 적기병들을 막아내려 정렬해 있는 장면을 공중에서 촬영한다던지(소련군 헬기의 지원을 받은 장면이 많음), 서양 유화 그림에서 보던 전투장면에서 말들이 떼지어 이동한다던가 하는 장면이라던지... 게임이나 그림에서나 보던 전투장면을 영화속에 재현해 놓은 걸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CG가 없으니 뭐.. 심지어는 수천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벌거벗고 강물에 뛰어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원작소설에는 있었을 것 같은) 이런 건 굳이 안나와도 될 법도 할 터인데 수천을 동원해 촬영해 냅니다. 

-> 대규모 전투씬

또한 영화 제작을 위해 실제 소련의 유명한 박물관 등을 빌려 (무도장면 등) 촬영을 했을 정도로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고. 오리지널 로케이션은 기본이었고 이건 러시아 작품의 특성상 실제 캐릭터나 로케이션을 그대로 영화에 투영하는 걸 선호한다고 하더군요. (허리우드판 전쟁과 평화를 보면 러시아 같지 않은 어디 멕시코나 텍사스와 같은 언덕에서 전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좀 이상하게 보이긴 합니다)  또한 전투에 쓰인 대포도 모형이 아니고 진짜같이 만들었는데 영화 해설하는 비디오를 보면 박물관 대포보다 더 실제같이 만들어서 촬영후 대포를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아무튼 진짜 러시아를 진짜를 영화에 옮기려 막대한 노력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전체적으로 많은 걸 참고하고 연구해 제작한 느낌이 드는데 감독이 원한 걸 소련정부에서 전적으로 지지한 공도 크다보 봅니다. 다시는 이런 거대한 인원을 동원한 전투를 재현한 영화를 볼 수는 없을 겁니다. 가짜는 없다 이것은 진짜다 ㅋ

 

431분짜리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 외적으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이젠 어떤 장편의 영화도 불평없이 볼 수 있는 내공을 키웠다는 것입니다. 워낙 상영시간이 길어서 정말 다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일부 지루함과 철학적인 장면들을 이겨내고 볼 수 있었죠. 

촬영에 특별한 점이라면 화면분할장면처럼 보이는 장면이라던가, 롱샷이나 렌즈 흐릿하게 하는 장면들이 많다는 점인데 특히 인물이 보는 사물을 흐릿하게 하는 장면이 많습니다. 

무도회장 문 앞에서 춤을 같이 추자는 손길을 받지 못해 서성이는 장면이 대표적으로 화면분할을 쓴 장면.. 나탸샤가 서 있는 장면에 맞는 영단어가 있죠. wallflower라고.. 파트너가 없어 춤추지 못하고 벽에 서있는 꽃~

 

이 영화의 단점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욕심많고 잔혹한 나폴레옹군과 포로에게 조차도 관대한 러시아군을 비교하듯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알아보니 이건 딱히 영화적 관점도 아니고 톨스토이의 원작소설에서도 그러하다고 하더군요 ㅎ. 

이 영화 놓치지말고 꼭 보시길..  원작을 요약해서라도 알고 보면 재밌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초반 1,2부가 좀 지루할 수 있으나 거의 전쟁씬으로 가득찬 3부부터는 재밌게 볼 듯.. 

 

VS 허리우드판 <전쟁과 평화>

 

 


소련판 431분짜리 전쟁과 평화를 보고나서 문뜩 망작이라는 허리우드판 1956년도 전쟁과 평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208분의 비교적 길고 오드리 헵번에 헬리 폰다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인데... 

허리우드판 전쟁과 평화는 스토리는 꽤 잘라내서 영화 도입부터가 어색한 느낌에 전체적인 영화 분위기는 너무 밝고 화사한게 러시아의 분위기가 전혀 안 나더군요. 이건 직전에 소련판을 봐서 더 그럴 겁니다. 복장마저 추운 북국의 러시아 느낌이 아니라 남쪽 태양의 나라 느낌이랄까요. 마치 19세기 미국 남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더군요. 러시아 귀족을 남부 부유한 백인들로 바꿔서요.. 시대와 장소만 바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확장으로 영화를 찍는게 나을 뻔.. 


허리우드판은 원작에 불충실하게 보이는데.. 
두 영화를 비교해서 보면 헐리웃판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 수 있습니다.. 고증이라던가 전체적인 영화 분위기가 미국 남부와 멕시코를 합쳐놓은 것 같은 배우들이 잔뜩 모여있는데 복장은 유럽이나 러시아식.. 그나마 고증도 소련판만큼 철저하지도 않아보여서 소련판을 보면 그 당시 그랬을 것 같다는 느낌이라면 허리웃판은 이건 가상의 공간을 러시아라고 우기는 것 같은 느낌. (영화 속에서 전혀 추워보인다는 느낌을 못 봤았음..)

허리우드판의 세 주인공.. 그냥 미국 남부의 아가씨와 건달들 느낌?

 

허리우드판 오드리 햅번과 헨리 폰다(50대). 역시 미국 남부에서 데이트하는 분위기.



주인공의 경우 소련판과 허리웃판의 피에르의 성격이 전혀 상반되는데 소련판의 피에르는 말 잘 못하고 비사교적며 수줍어하는 성격인데 반해 허리웃판은 활달하고 말도 잘하며 농담까지 잘 하는데 영웅호걸 스럽기까지...  원작에 가까운 건 당연히 소련판이구요..... 허리웃판은 그냥 피에르가 나타샤의 가디언이랄까.. 허리우드형 쾌남~ 

나타샤의 경우 소련판은 어린 쑥맥에 순수하고 발랄한 느낌이라면 허리웃판은 발랄하나 세상물정아는 성숙한 느낌이라 원작의 나타샤를 확실히 소련판이 잘 표현했습니다. 사실 소련판이나 허리웃판이나 약혼한 안드레이를 두고 바람둥이 유부남 아니톨과 야반도주하는 장면에선 저 철딱서니 없는 여자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긴 하더군요. 물론 나타샤 자신도 유부남인 아나톨에게 속은 것이지만 안드레이를 배신한 건 맞거든요..그래도 대략 17살 소녀의 행동이니 약간 이해할 수 있기는 할 듯도 하지만요.. 

 

소련판 남자 주인공들. 안드레이와 피에르(40대).

 

소련판 감독이자 피에르역의 배우.

 

두 영화가 공유하는 단점 하나가 있는데 주연 남자배우 피에르역이 너무 나이가 많다는 겁니다. 소련판은 40대, 허리우드판은 50대.. 특히 허리우드판의 헨리 폰다는 쫌 심해요...

허리우드판의 장점이라면 원작에 충실하든 안하든간에 스토리를 파악하기에는 아주 수월합니다. 빠른 진행과 압축해 허리웃 스타일로 편집한 스토리는 원작이 없었다면 그 나름으로 잘 만들수도 있었겠다 싶을 정도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어릴때부터 전쟁과 평화를 읽어온 자신들 나라의 이야기를 대하는 러시아와 타국 이야기를 돈벌이 수단으로 대하는 허리우드 시스템과는 해석의 차이가 분명할 수 밖에 없는게 앞에서 얘기했듯 아무리 봐도 허리우드판은 러시아 분위기가 1도 안난다는 겁니다..  원작의 캐릭터들을 허리웃 입맛에 맛게 재창조한 느낌이 많이 든다는 것.. 물론 그게 좋다 나쁘다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다르겠지만... 아무튼 내용이나 시간순서라던가 원작과 다른 부분들이 제법 있어서 이건 전쟁과 평화가 아니다 싶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마 원작소설을 읽은 분들은 허리우드판을 엄청 싫어할 듯 싶어요. 

 

영화의 스케일을 보면 앞에서 얘기했듯이 실외나 실내나 스케일이 너무 차이나서 두 영화를 모두 보고나서 그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허리우드판에서는 실내세트인 듯한 곳에서 결투를 하는데 이게 겨울인지 봄인지 복장마저도 겨울 스럽지 않죠. 다들 얇은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소련판에서는 심지어 눈밭 결투에서 쓰려져 눈을 먹는 장면까지 나오는데요. (소련판 돌로코프와 피에르의 결투장면)

허리우드판 결투장소. 저 언덕위 달은 조명처럼 보임.. 주변 나무들도... 바닥의 눈도 가짜일지도...

 

소련판 결투장소. 진짜 눈내린 숲속에서...

 

아나톨이 나타샤를 꼬이는 오페라극장 장면에서 소련판의 진짜 대오페라장과 허리우드판의 시골극장이나 세트장 같은 분위기는 비교가 크게 되구요. 

소련판을 보면서 처음부터 강하게 느꼈던게 러시아 귀족들의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허리우드판에서의 느낌은 귀족이라기 보단 부자들의 삶이랄까... 급이 다르죠. 귀족과 부자의 느낌은... 

음악은... 소련판이 클래식하게 맞은 것에 비해(그래서 좀 밋밋할 수 있긴 함), 허리우드판은 흔한 영화음악에 흔히 쓰이는 경음악 스타일이랄까 전반적으로 경쾌하나 그 시대 러시아 분위기는 절대 아닌 그냥 흔한 허리우드 OST 느낌.. 

소련판은 러시아인의 문화를 꽤 담아내고 있는데 허리우드판은 앞에서 여러번 말했듯이 미국 남부 분위기가 날 정도라..  예를 들어,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장엄한 기도를 위해 수많은 러시아군인들이 모여드는 장면이라던가 등장인물들의 복장이라던가, 노래하며 행진하는 러시아군과 환영나온 러시아 민중들이라던가.. 

언어는... 소련판은 당연히 러시아어를 쓰죠. 나폴레옹 등은 프랑스어를 쓰구요... 반면에, 허리우드판은 어쩔수없이 미국식 영어를 씁니다.. 그런데 나폴레옹도 영어를 씁니다^^; ... (소련판에는 주인공 피에르가 프랑스군에 붙잡혀 통역을 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허리우드판에서는 그런 장면을 전혀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러시아어 대신 영어 쓰는건 그렇다치고 나폴레옹군도 같이 영어 쓰는 건 아니다싶더라구요. 통역 안해줘도 좋으니 불어를 쓰시라... )

러시아 군대가 행진하며 영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부르는 장면은 그 중에서도 실제감이 높습니다. 역시 이런 건 러시아로..

전투장면은 허리웃판도 비전투장면의 협소합을 만해하려는 듯 나름 대규모의 전장과 군사동원을 보여주지만 소련판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넓은 전장을 사용하고 동원한 군사도 적잖은 건 맞지만 집단 덩어리의 인원이 상대적으로 듬성듬성하고 소련판이 보여주는 (소련군의 지원을 받아 헬기에서 촬영한) 대회전을 하는 듯한 전투씬을 보여줄 정도는 아닙니다. 군대와 각 병사들의 전투 모습도 소련판속 병사들의 진지함에 비할 바도 아니고... 

소련판에서 동원된 군인들을 지시하는 군장성

 

결정적으로 소련판은 전장에서 여러 부대들이 각기 전투를 벌이는 대혼돈의 장면을 잘 보여주고 있으나 허리우드판은 그 정도는 아닙니다. 허리우드판이 (엑스트라 동원능력상의 한계에 기인한) 마치 군대 한 덩어리와 한 덩어리트의 대결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면, 소련판은 여기저기서 군대 덩어리들과 덩어리들의 대결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러다보니 허리우드판에서는 전장에 제법 군사들이 많아 보이지만 빈 공간도 많아 보이구요. 게임 토탈워(total war)에서와 같은 장면을 연출할 수 없는 기죠.. 그걸 소련판은 비슷하게 해냈고.. (괜히 소련군 1만 2천명이 동원된 것이 아님. 소련군 장성이 직접 지휘할 정도로 아낌없는 지원을 했으니... 단, 기병만큼은 소련판에 비해 동원된 말 숫자가 적긴 하지만 허리우드판도 많은 말들을 동원해 효과적으로 촬영한 듯합니다. 아무튼 허리우드판도 전쟁씬만은 비교적 심혈을 기울인 건 맞습니다. 소련판이 더 대단해서 그런거지... )

또한가지 차이점이 있는게 소련판에는 포연이 자욱한 전장을 보여주는데 허리우드판은 비교적 깨끗한 전장을 보여주죠.. 이게 현실의 전장은 소련판처럼 연기가 자욱해서 잘 안보였다고 하더군요. (완전 개싸움일 가능성이 많다는 거죠)

-> 아우스터리츠전투 : 소련판  (허리우드판은 전투씬 촬영 없음)

-> 보르디노 전투 : 소련판 vs 허리우드판

 

허리우드판 프랑스 기병들. 이 장면만은 소련판보다 나은 듯 보이더군요.

 

전투장면 이외에 중요한 장면이 모스크바가 불타는 장면(이건 영화를 보기 전에도 알고 있던 유명한 역사적 장면이라 영화를 보면서 분명 화재씬은 나올거라고 예상을 했죠)이 허리우드판에는 거의 없다는 것. 그냥 나폴레옹이 전해 듯는 "모스크바가 싸그리 불타고 사람들은 떠났다"라는 대사와 피난간 사람들이 먼발치에서 붉게 변한 (그림으로 세트된) 모스크바 하늘을 바라보는 씬 그리고 화톳불 피어오르듯 살짝 타오르는 정도의 화재 장면이 전부임... 반면에 소련판에서는 모스크바거리 세트장을 만들고 엄청나게 불태워 댑니다. 정말 심하게 불태우고 그걸 위험하게 촬영해내는 소련의 기적(역시나 소련군의 지원이 없으면 힘들었을...). 

소련판에서의 모스크바 화재장면

 

허리우드판속 모스크바 화재장면. 모스크바를 떠난 피난민들이 멀리서 노을지는 듯 불타는 도시를 보는 이 장면 하나가 전부

 

모스크바에 진주한 나폴레옹군이 러시아인들을 총살하는 장면이 있는데 허리우드판은 정말 엉터리스러운게 앞열의 누군가가 총살되어 죽어가고 그 다음이 자신들 차례일 터인데도 사람들 표정이 남의 일 구경하듯 긴장감이나 공포감 같은 건 전혀없고 심지어 총살대에 선 사람의 표정조차도 어색하더군요. 이건 소련판에서의 총살대에 선 사람들 표정과 비교해보면 너무 확연히 비교되서 허리우드판은 영화를 왜 이따구로 찍었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총살되러 놀러온건가... 다음 총살은 자신들 차례인데 미리 한발짝 앞으로 나오는 장면에선 아연실색했죠 ㅋ... 무슨 좋은 대기줄 탔다구 어이쿠... 다행히 주인공을 포함 대기줄의 사람들은 총살집행을 면하는데 그 표정이 너무 평범해서 놀라게 됩니다.. 

허리우드판에는 실망스러운 장면 투성이인데 예를 들어, 첫 무도회에 갈때의 나타샤(원작소설에서는 16세로 표현) 의 용모나 행동은 전혀 사교의 장에 첫 발을 내딛는 긴장되고 순진한 어린 소녀의 것이 아닙니다.. 얼굴도 약간 늙어 보이기도 하거니와 (오드리 헵번의 깡마른 얼굴이 단점이 되는 순간...  여담인데 예전에 TV예능프로그램에서 김희철이 얼굴이 이쁘긴 한데 약간 마르고 길쭉한 모 여자아이돌을 보면서 자신의 할머니같다고 한 장면이 있었는데 저도 무척 동감하여 웃었다는... ㅋ ) 행동거지는 사교무대를 좀 아는 여인이 하는 것이지 결코 순진한 소녀라고 보이진 않더군요. 

좀 나이들어보이는 오드리 햅번.. (죄송합니다ㅠㅠ)

 

허리우드판을 보면 남의 나라 명작소설을 함부로 영화화하는게 아니다는 걸 잘 증명하는 듯 합니다. 굳이 장점을 찾자면 원작을 헤아리지 않고 생략과 빠른 전개로 허리우드식으로 스토리를 알기쉽게해서 지루함을 좀 덜어준 점 정도...원작을 읽은 분들은 허리우드판 보면서 무지하게 욕해댔을 겁니다.  반면에 소련판은 너무 문학적인 장면이 많아서 내용을 모르고보면 지루할 수도 있구요. 그럼에도 어느면으로보나 소련판이 얼마나 원작에 충실하고 공들여 잘 만든 작품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무거운 짐 하나 덜은 듯.. 드디어 전쟁과 평화를 봤다는 짐? 

아무튼 기회되시면 시간을 나눠서 천천히 보시길. 특히 소련판...  무료봉사 인력동원을 요즘 인건비로 따지면 아마 역대 최고로 돈 많이 들어간 영화일 듯... 

-> 소련판 트레일러

-> 허리우드판 트레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