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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벌새 (House of Hummingbird, 2018)

Naturis 2020. 7. 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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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영화 <벌새> (House of Hummingbird) 입니다.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탄 것으로 유명해서 아마 영화 좀 관심있는 분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마도 독립영화라는 한계로 인해 배급 자체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15만 관람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영화는 1994년이라는 한국사에서 특이하고 비극적인 한 해를 배경으로 중2 소녀가 자신과 사회 속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1994년은 우리사회에서 이상한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때였는데 찌는 듯한 여름날 갑자기 김일성 사망이란 소식(당시에는 죽지 않는 원수. 장수의 상징이였죠..ㅋ )과 뒤 이어 이어진 성수대교붕괴사고.. 다음해에는 삼풍백화점붕괴사고 등등..  개발독재과정에서 쌓여온 부정부폐와 안전불감증이 폭발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죠. 어찌보면 김영상정부가 독박을 쓴 면도 있고.. 

그런 이상한 시절을 살던 중2 소녀 은희도 이상한 아이로 찍힐 만한 세상이었죠. 흔히 말하는 날라리... 공부 못하고 담배피고 디스코장에가고 장난삼아 물건 훔치고 뭐 그런거... 지금식으로보면 단순히 중2병의 소녀라고 볼 수도 있으나 당시에는 불량의 기준이 광범해서 사회와 가정과 국가가 요구하는 모범시민, 모범학생이 아니면 불량하고 이상한 딱지를 받아야 하던 세상이었던거죠. (그러고보면 저는 아주 모범적으로 살았던 듯... 하면서도 그렇다고 단정지울수 없는게 아주 드물게 불량했네요..ㅋ )

이 영화에는 여러 사회적 문제 예를 들면 가정문제들 (가정폭력이라던가, 특이하게 이 영화에서는 부모의 폭력보다는 오빠의 폭력이 문제였음), 학교와 교육문제(우열교육이라던가 지금은 사라졌을 촌지문제라던가.. 여담이지만 제가 고등학생이었던 90년대 초에는 학교선생이 학생부친상에까지 가서 촌지를 받기도 했어요.. 저희반의 실제상황... ㅋ), 성정체성 문제(양성애까지 얘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 어린 여자애들간에는 그런게 있다고 보여서 딱히 성정체성 영화라고 규정하고 싶지는 않음) 등등 을 다루고 있는 듯도 보이는데 굳이 중심으로 삼는 코드를 뽑자면 사회가 요구하는 모범답안에서 약간 삐딱하게 보이는 이상한 아이, 별난 사람을 얘기하려는 것 같습니다. (넓게 보면 사회적 소수자)

그 사회적 소수자를 단적으로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왼손잡이" 입니다.

주인공 은희와 그녀가 좋아하는 학원 선생님(한문을 가르침)이 왼손잡이죠. 

이 왼손잡이들이 영화 내내 왼손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이게 오른손잡이인 저같은 대부분의 사람에겐 좀 이상할 수 있습니다. 많이 어색하고 시각적으로 불편한거죠. 

둘의 이런 "왼손잡이"라는 공통점이 영화에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일반적으로 보는 글쓰기와 다른 장면을 수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에겐 어색한 광경일 수도 있는데 이게 이상한 사람들로 편견을 받는 사람들을 은연중에 표현한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확실히 오른손잡이들에겐 이상한 광경이긴 하니까...  단순히 왼손잡이에 대해서도 이상하고 불편한 시각이 존재하는데 그 너머의 소수자들(예를 들면 성소수자들)에겐 얼마나 편견이 심한가하는 생각도 드네요. 

마찬가지로 은희의 귀밑에 난 "혹"도 그런 이상함을 상징하는 것도 같습니다만 이상한 해석을 할 것 같아 더 이상 언급은 안하겠어요 (김일성의 혹과도 연결해서 상상을 해 봄 ㅋ)

 

 

이상한 세상 1994년에 사회적으로 성수대교붕괴이라는 큰 사건이 자신의 삶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등을 통해 이 영화에서는 명확히 얘기하는 듯 합니다. 자라난다는 것은 혼자만의 세상에서 복잡하게 연결된 세상을 이해해가는 과정이라고.. 

다투던 부모가 언제 그랬냐는듯 화해하고, 무관심해 보이던 아버지가 은희가 수술하게 되자 울음을 보이며 걱정한다던가, 믿던 절친이 은희를 고자질하고 다시 화해한다던가,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은희의 오빠마저 누나가 성수대교붕괴로 사고를 당할 뻔하자 식탁에서 눈물을 흘린다던가, 자신만을 열열히 사랑하는 것만 같던 후배 소녀가 갑자기 쌀쌀맞게 돌아서며 "그건 지난 학기 일이라고 말한다던가", 자신과 공통점이 많으며 자신을 이해해주던 학원 선생님(그 선생님도 아마도 이상한 세상을 살아왔고 살고있으리라 짐작되는)이 연락없이 떠나고 나중에 연락을 받고 선생님댁을 찾지만 성수대교사고로 선생님은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안다던가. 자신의 중심으로 세상은 돌아가지 않으며 세상은 단면적이지도 않아서 자신이 성장해 가는 건 관계로 엮인 세상속에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 ㅋ

더 오버해서 설명하자면 어린시절 흔히들하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오판을 하는 철부지스런 모습이 주인공 은희에게도 역시 보여지고, 친구로부터 "넌 가끔씩 너만 생각한다"는 얘기를 듣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보기도 하는데...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세상이 자신의 감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고 인생이 좋고 나쁨만 있는 것도 아니듯 자신과 주변의 변덕스러운 모습이 우리들 인생이라는 걸 알아가는 성장통 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영화 <벌새>에서는 독립영화이다보니 잘 알려지지 않는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주인공 은희역의 박지후 배우의 연기가 아주 좋습니다. 중2의 감성을 잘 표현했고 연기력도 좋더군요. 아직 고등학생인데 좋은 배우로 생정할 것을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그 외 배우들은 은희의 부모라던가 병원의사 등의 배우들은 TV와 영화에서 자주 보던 분들인데 역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어쨌든 이 영화 벌새 초반에는 다소 산만하게 주제를 다룬다 싶었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그런 것들이 잘 융화되어 1994년의 중2가 겪는 이상한 세상에서 성장해가는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괜히 여러 상을 탄게 아닐정도로 잘 만들었습니다.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