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강하게 있습니다
워커바웃(Walkabout, 1971)은 호주 원주민인 에버리진(Aborigine)이 출연하는 보기드문 영화입니다.
James Vance Marshall 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으로 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대략의 줄거리를 읽어보니 영화와 비슷하면서 약간 다릅니다.
우선 워커바웃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호주의 원주민인 에버리진은 소년이 성인이 되기 위한 절차로 황야에서 일정기간동안 자급자족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이걸 워커바웃이라고 하며 일종의 성인이 되기위한 통과의례 같은 거라고 보면 됩니다.
특이한 배경의 40년도 더 된 오래된 영화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끌렸던 이유는 배우 제니 에거터(Jenny Agutter )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영화를 보고 특정 배우에 관심이 생기면 그 배우의 영화를 몇 편 이어서 보는 그런 방식이죠.. 제프 브리지스, 도널드 서덜랜드, 그리고 제니퍼 로렌스 같은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현재는 60대의 할머니 배우지만 이 영화를 만들 당시에는 스물이 채 되지 않은 나이네요..
이 영화는 에버리진이 나오긴 하지만 단순히 에버리진의 삶을 그린 영화는 아니고.. 스토리만 보면 도시 소녀와 남동생의 황야 탈출기 쯤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게 단순한 영화도 아닙니다..
영화의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와 남매가 호주의 반사막지역으로 피크닉을 갑니다. 어느 순간 아버지는 미쳐버린듯 권총으로 남매를 위협하고 자살해 버립니다.
남매는 호주의 반사막지역(아웃백 outback)을 횡단해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아웃백에서 남매가 생존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영화의 주배경이 되는 호주의 아웃백(outback), 보통 아웃백은 유명한 스테이크 체인점도 있긴 하지만 원래는 호주의 황량한 반사막지역,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의 작은 관목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지역을 말한다. 고등학교때 제가 좋아하던 지리학으로 따져보면 완전한 사막이 아닌 반사막의 건조기후, 기호로는 BS쯤 되겠네요..
남매는 우연히 워커바웃중인 에버리진 소년의 도움으로 같이 동행하며 길을 떠납니다. 어린 남동생과 에버리진 소년은 비교적 잘 동화해 가지만 고등학생인 소녀는 에버리진 소년과 소통이 쉽지많은 않습니다. 그래도 문명의 옷을 벗어던지고 나름 동화되는 듯 합니다.
버려진 농장에 도착한 일행... 소녀에게 이성적 호감을 갖고 있던 에버리진 소년은 몸을 씻고 있던 소녀를 향해 마치 극락조 수컷이 암컷을 향해 춤을 추듯 구애의 춤을 춥니다. 이를 성적인 도발로 오해한 소녀는 소년을 극도로 경계합니다.
밤새 구애의 춤을 추는 에버리진 소년.. 다음날 밤새 구애의 춤에 지쳐버린 소년은 나뭇가지에 팔을 걸쳐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벗어두었던 문명의 교복을 자신은 물론 남동생에게도 입히는 소녀.. 소년을 뒤로 하고 도로를 따라 문명으로 돌아옵니다.
수년후 성인이 되어 도시의 삶으로 돌아온 소녀.. 귀가한 자신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감정없는 포옹을 하면서 몽롱한 눈으로 어느날을 회상합니다.
소녀와 남동생 그리고 에버리진 소년이 오아시스에서 벌거벗고 수영하던 그 곳에서의 추억을..
( 영화 중반에서는 그녀 혼자서 수영하는 모습만 나왔었죠.. 어쩌면 마지막 회상씬은 그녀의 상상일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회상이 맞을 겁니다. )
대략적 스토리를 적어봤습니다만 스토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영상에서 담고 있는 것들이고 그것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담겨져 있습니다.
배경이 되는 반사막의 아웃백은 파라다이스와 같습니다.
사실 에보리진 소년이 추는 춤이 극락조 수컷의 춤과 거의 비슷합니다. 이건 최근에 EBS다큐프라임 <천국의 새> 3부작에서 확실히 확인했는데 극락조 수컷의 구애의식(courting)을 보여줍니다...( 천국의 새 다큐멘터리는 영상미 정말 좋았습니다만 좀 지루한게 흠이었죠.. 암튼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천국의 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court라는 단어는 영문 글을 읽다보면 은근히 자주 보는 표현입니다. 알아두시면 좋아요.. 구애한다는 의미로 자주 쓰입니다.. 특히 동물 수컷이 암컷에게 짝짓기하기전에 구애할 때.. ^^ )
이렇게 보면 파라다이스에서 천국의 새 극락조 수컷인 에버리지 소년은 속세 문명세계에서 온 소녀에게 천국의 춤을 추며 구애를 했던 거죠.. 그것을 에버리진 소년의 성희롱 쯤으로 오해를 하고 소녀는 서둘러 천국을 떠나는 이야기로 보면 될 듯도 합니다.
에버리진 소년의 구애의 춤...
영화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에버리진의 전통 악기인 디저리두(Digeridoo) 소리에 맞춰 구애의 춤을 춥니다.
위 사진은 극락조(bird of paradise) 종류의 수컷 하나가 구애의 춤을 추는 사진입니다. 영화에 있는 장면은 아니구요.. 화려한 모습의 수컷이 평범해 보이는 남컷을 위해 구애의 춤을 추죠.. 일부 원시 부족에서도 남성이 여성을 위해 이런 춤을 춥니다.
배경이 되는 반사막의 아웃백은 파라다이스와 같습니다.
황량한 아웃백은 세상과 격리된 일종의 파라다이스.. 극적인 파라다이스는 오아시스 장면에 있구요..
파라다이스(아웃백) 밖으로의 탈출구를 찾는 소녀, 적응하는 남동생, 그리고 그들을 파라다이스로부터 떠나게 하고 싶지 않은 원주민 소년..
여기서 천국의 비극이 예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에버리진 소년이 나무에 흡사 십자가처럼 매달려 죽는 장면은 언뜻 뜻밖의 죽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형상으로는 밤새 소녀를 향해 구애를 하다가 지쳐 죽은 것이 맞습니다만 지쳐 죽은 곳이 마무에 그것도 십자가처럼 포즈를 취하다니요.. 이것이 에버리진 소년의 구원의 죽음인지 난해하고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더 나아가 애버리진 소년의 죽음은 마치 십자가에 매다린 예수의 모습으로까지도 보이기도 합니다.
죽은 소년... 왜 십자가에 매달리듯 나무에 걸쳐 죽었어야 했는지... 소년의 죽음이 소녀의 구원을 의미하는지.. 는 잘 모르겠습니다.
- 영화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분위기는 삶과 생존 이런 것입니다. 도시든 아웃백이든, 인간의 삶이든 동물의 삶이든 끊임없이 삶과 죽음, 먹고 먹히는 영상을 보여줍니다.
심지어는 에버리진 소년이 구애의 춤을 추기 위해 머리에 쓴 깃털, 단순히 사랑을 얻기 위한 춤일 수도 있지만 다음 장면에서는 죽은 새(또는 닭) 주변에 깃털이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소년의 머리에 쓴 깃털은 이 동물의 희생이 있었던 거로 보입니다.
벌레는 과일을 먹고.. 과일을 먹던 소녀의 남동생은 고기맛이 난다고 하는데 아마 벌레가 든 과일을 먹었던 듯 합니다.
삶과 죽음과 함께 영화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소통과 관계에 대해서입니다.
영화 초반 아버지가 자살하기 전... 아버지와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은 대화가 거의 없습니다. 아버지와 남매간의 대화도 나무래는 대사 말고는 대화가 거의 없습니다.
도시인인 소녀와 오지인인 에버리진 소년 사이에는 각기 다른 언어로 인해 소통이 불가합니다. 소녀는 에버리진 소년과 소통불가한 자신의 언어로 소통하려하지만 반면에 어린 남동생의 경우 남동생은 바디랭귀지와 의성어까지 사용하여 에버리진 소년과 소통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 문명과 문명사이의 이런 벽들은 영화 초반에서부터 영화 끝까지 계속되는 것으로 보아 감독은 분명 소통의 벽을 얘기하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보면 이런 벽이 있기 때문에 인간끼리 또는 인간과 동물 끼리의 삶과 죽음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소년과 소녀의 경우로 보면 소통과 교감의 실패랄까요, 천국의 소년과 이미 속세에 물들어 있는 소녀 사이의 소통의 어려움을 보여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직 완전히 속세에 물들지 않았던 남동생은 에버리진 소년과 소통을 잘 하며 지냅니다. 에버리진처럼 몸에 문양을 그려넣고 간단한 언어도 배우고 부족한 건 바디랭퀴지까지 써가면서요... 반면에 소녀는 에버리진 소녀와의 소통에도 게을리 한면도 있긴 합니다. 문명의 소통 실패라고 볼 수도 있구요..
한편으론 에버리진 소년 자신도 이미 문명화되어버린 시골의 빈민 노동자로 전락해버린 원주민 사회를 떠나 워커바웃 기간동안 천국을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도시의 상처입은 영혼(소녀)과 고귀한 야만(에버리진 소년)의 우화" 라고 볼 수도 있구요..
아웃백에서도 벽은 존재합니다만, 그 벽안 속에서의 주인공 일행의 모습은 파라다이스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은 도시에서... 자신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감정없는 포옹을 하면서 초점없는 눈으로 과거를 회상하죠.
오아시스에서 벌거벗고 수영하던 그 곳에서의 추억을.. 탈출해 나온 그 옛날의 파라다이스를 꿈꾸고 그리워 하듯...
모든 것을 벗어던진 아무런 벽이 없던 그 때 그 공간은 소녀의 파라다이스였다고 보여집니다.
이 영화는 난해하지 않은 단순한 영화이면서도 보고나면 다시 곱씹어 보게되는 그런 영화입니다.
롱샷, 크로우즈업 등을 통해서는 삶과 죽음을 끊임없이 보여주는데 그 속의 죽음은 자연스러울 수도 있고 잔인해 보일 수도 있고....
마치 영화 자전거도둑에서와 같은 네오리얼리즘적인 분위기도 다분히 녹아있는 영화입니다. 순수하지만 비극적인 때론 잔인한 현실을 그대로 들어내는...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그런데 이 영화는 자연 속의 영화이기 때문에 자연스런 벌거벗은 모습이 좀 나오긴해서 어린 자녀와 보기에는 좀 그럴것 같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그냥 벌거벗은 자연스런 모습일 뿐인데요..
참고로 영화에서 20세 정도인 제니 에거터는 현제 60이 좀 넘었는데 앞으로도 나이에 구애받지않고 영화에서라면 옷을 벗을 생각이 있다고 말했었죠.
사실 제니 에거터의 작품중에 노출씬이 있는 작품이 꽤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야한 작품을 찍은 건 아니지만 몇몇 작품들에서는 전신노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 강력 추천해 봅니다.. 저도 나중에 다시 보면서 영화를 다시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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