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야기/끄적끄적

불신의 시대

Naturis 2010. 3. 27. 11:44

어제 새벽 12시 넘게 집으로 오는 길에 어떤 젊은 남자가 다가와 공중 전화카드를 내밀면서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가진게 전화카드 뿐이라면서 차비가 없다고 하더군요. 집은 인천인데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나 뭐라나... 추운 날씨에 좀 모자라 보이기도 해서 위아래를 훑어봤더니 행색은 멀쩡한 것 같은데 좀 수상한 느낌이 들더군요. PC방에 갈 돈 구하는 사람같은 느낌...

그래도, 워낙 불쌍하게 말하길래 주머니 속에 있는 내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허허" 이거 사람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속으로 고민을 했습니다. 내가 주저주저하니 조금있다가 미안하다면서 그냥 가던 길로 가더군요. 집으로 오는 길에 왠지 그만이 찝찝하더군요, 한 사람 얼어죽이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길거리서 돈 빌려달라는 사람을 여러번 봐왔기에 내가 왜 돈을 줘야 하는 생각도 들고...
생각해보면 지갑은 잃어버린 사람이 왜 전화카드는 가지고 있는 건지.. 보통 전화카드는 쓰지도 않거니와 쓰더라도 지갑에 넣어두고 다니니까요. 마치 전화카드가 그 사람의 작업용 도구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더군요. 지갑 잃어버린 사람이 핸펀은 어디에 두고 사는지... 요즘은 핸펀이 있어서 왠만해선 돈 없으면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해서 해결하는게 더 편한 세상이긴 하지요.

어쨌거나 만에하나 정말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제 인심이 너무 야박하고 제 마음이 너무 매말라 버린 행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씁쓸하더군요. 그러고보니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줘 본지도 십년은 족히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하철에서나 지금이나 그냥 줘 버렸으면 맘이라도 편할 지 모르는데요.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웃을 일이 적어지면서 제 마음도 점점 차가워 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제 자신의 행동에 자주 놀래곤 합니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누굴 믿어야 할지. 점점 믿음보다는 이해관계로만 세상을 살아가는 나 자신에 실망하기도 하고...
증오와 불신에 찌들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누굴 믿어야 할까요?
누군가를 믿기에는 너무 세상을 많이 알아버려서 알면 알수록 인간과 세상에 대해 회의감만 느끼는 걸까요.
불신이라는 자갈밭 세상에서 저도 그 중 하나의 자갈일뿐 인가 봅니다.

그냥 넋두리 좀 해 보았습니다. 생각을 멈춰야 할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