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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有不得 反求諸己(행유부득 반구제기) -명심보감-

Naturis 2010. 2. 2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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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내 일이 잘 안풀리면 남탓, 세상탓 또는 운명탓으로 돌리곤 했다. 특히 운명탓을 돌리는 경향이 많은데, '이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된거야', '이 일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어' 라는 식이다. 분명 일이 잘못된 이유 - 대부분은 내 잘못이다 - 가 있음에도 다른 곳으로 탓을 떠넘겨 버린다.
일종의 회피 전략이랄까. 정신적인 회피를 함으로써 나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고하는 본능적 작용인 것 같다.
거기까지는 좋다. 정신적 상처를 덜 받는게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분명 잘못은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내 삶에서 반복하게 되고, 그럴때마다 회피전략을 쓰는 건 나자신을 정신적으로 격리시키는 것 같다. 회피라는 마약을 주사해가면서.

명심보감에 "行有不得 反求諸己(행유부득 반구제기)"라는 말이 있다. "행함에 얻지 못하면, 돌이켜 자기 자신에게서 구한다" 라는 말이다.
사람은 실패에 대해 남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자기 합리화일텐데.
이 격언을 좀 확대해서 생각해보자. 잘못된 것을 자신에게 찾아 고치지 않으면 또다시 잘못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이기적인 정당화에 악용되지 않을까. 더불어 자신의 내부에 생각의 통로를 막는 장벽을 높고 두껍게 싸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도저히 외부의 생각이 넘보지 못할 만한 그런 장벽을...


얘기가 좀 다른 것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이왕 쓴 거 마저 마쳐야겠다.
비단 나를 비롯한 모든 개인들에게만 해당될 문제가 아니고, 작은 친목 모임에서부터 정부기관같은 큰 조직까지 모든 집단에 해당하는 문제라면 어떨까?
개인과 달리 조직은 스스로 반성하고 잘못을 바로잡아가기가 쉽지가 않다. 결정적으로 주체가 모호하다. 개인의 결합일 뿐, 리더의 결단이 서지않고서는 스스로 조직의 잘못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조직원 스스로는 잘못을 바로잡는데에 힘도 없거니와 관심도 없다. 조직원 자신들에게는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느끼기가 어려우므로 스스로 나서지는 않는다. 결국 리더이든 일반 조직 구성원이든 스스로 잘못을 바라잡지 않으면 외부의 힘에 의해 그 잘못이 바로잡히지 않을까 싶다. 조직의 리더가 물러나거나 조직이 해체되거나 기타 여러가지 방법에 의해서.
그러고보면 나는 사람들이 뭉쳐서 조직을 만들어 조직의 일원으로서 행동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조직의 일원이 되면 조직원 자신들의 행위의 옳고 그름에 둔감해진다고나 할까. 길거리의 불량 청소년이나 깡패 집단부터 작은 회사부터 대기업까지, 더 나아가 정부와 국가라는 큰 조직까지. 모든 행동에는 옳고 그름보다는 조직이나 조직원의 이익이 우선할 뿐이다. 조직은 조직원에게 큰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조직은 조직원에게 그만큼의 충성을 요구한다.
누가 정한 것인지는 모르나 조직은 통일된 행동을 원하기 쉽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역행하는 행동을 하는 조직원은 배신자나 매국노 등 비정상적인 존재로 전락하기 딱 알맞다. 혼자 있을때는 국가라는 조직을 그렇게 외면하고 비난하면서도 공공의 영역과 관련되면 눈에 불을 켜고 그 비정상적인 조직원을 비난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조직이 싫다던 다시 태어나면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살기 싫다던 그 통계조사결과는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속으로만 생각하고 떠들지는 말라는 것일까?
조직과 조직원은 조직이 조직원을 이용하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조직이 조직원을 위해사는지 그 반대인지 등등 딱히 이렇다고 말하기 애매모호한 관계이다.
그러나, 한가지만 명백하게 관계짓고 넘어갔으면 좋으련만.
거대한 국가라는 조직의 잘못은 누가 책임지고 누가 과연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적어도 독재국가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일 듯싶다.

명심보감의 격언하나에 생각지도 못하게 주절주절 적어내려갔다. 그래도 술마시고 적지는 않았으니 이해를 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