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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의 미륵부처가 극락정사로 간 까닭은?

Naturis 2011. 8. 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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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여러 섬들 중에 선유도가 있습니다.

선유도 공원이라고 잘 알려진 이곳도 한때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봉우리였습니다..
선유봉(仙遊峰), 그 것이 해방전까지만해도 선유도의 원래 이름입니다.  
조선시대까지만해도 선유봉(仙遊峰)이라는 한자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신선이 놀다갈 정도로 빼어난 곳이었나 봅니다..
지금도 충분히 경치가 좋다고 말씀하실 분들도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조선시대 수묵화 한 장을 보시면 지금이랑은 차원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바로 겸재 정선이 한강의 절경을 그린 "선유봉" 이란 작품으로 당시만해도 "선유도"란 섬이 아니라 주변이 모래밭으로 둘러쌓인 한강변의 작은 봉우리였습니다.



과거의 선유봉, 선유도


조선시대 지도 속에는 분명하게 한강 건너편에 선유봉이라는 지명이 눈에 보입니다...



또다른 조선시대 지도에도 선유봉(仙遊峰) 대신에 선유산(仙遊山)이라는 이름으로 한강북쪽의 양화진나루터(큰 양화나루)과 선유도 동쪽 양화나루터( 선유도 동쪽에는 한강북쪽 양화나루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연결되는 나루터가 있었고, 선유도 서쪽 양화교부근에는 안양천을 건너는 나루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강을 건너는 관점에서는 양화진의 양화나루를 "큰 양화나루" 라 부르고, 선유도 동쪽의 양화나루를 "작은 양화나루" 라고 불렀다면, 선유도 부근 두 나루 관점으로 얘기할 때는 선유도 동쪽에 위치해서 한강 건너는 나루를 "큰 양화나루" 또는 "화도(楊花渡)대나루" 라 부르고, 선유도 서쪽의 안양천을 건너는 나루터를 "작은 양화나루" 또는 "양화도소나루" 로 불린듯 합니다..  어디까지나 양화나루 위치와 명칭에 대해 제나름 정리를 위한 제 추측입니다.  그만큼 양화나루 명칭이 혼동되게 쓰이고 있습니다)를 잇는 뱃길 그리고 선유산 주변 서쪽으로 분기한 강화대로와 인천간로가 보입니다... 


위에 보시는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한강주변 지도에는 정확하게 선유봉과 주변 위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 시대에 들어오면 선유봉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됩니다..
1925년 한강 대홍수 이후 치수관리를 위해 둑을 쌓는다는 명분으로 선유봉 주민들의 이주를 종용했고 이후에는 선유봉 동남쪽의 여의도 비행장 건설을 위한 골자재 채취를 위해 조금씩 선유봉은 점점 그 모습을 잃어가게 됩니다... 선유봉 마을은 1936년 일제의 한강치수사업으로 폐쇄가 됩니다..
또한 해방후에는 미군이 인천가는 도로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골자재를 캐갔다고 합니다..

1930년대 추정 선유봉 사진...


 

1930년대 추정 선유봉 사진...



1950년대 추정 선유봉 사진


선유봉에는 용화사(선유봉절)이라는 작은 사찰이 있었는데 한국동란때 불타버리고 그 곳에서 남은 미륵부처는 전쟁당시 미군에 의해 현재 노량진의 극락정사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선유봉의 수난은 계속해서 이어져서 1962년에는 현재의 선유도를 관통하는 제2한강대교(현 양화대교) 건설로 선유봉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모래밭만 남습니다..
그때까지는 아직은 섬이 아니었지만 1968년 시작된 '한강개발' 로 골자재를 또다시 캐어가 현재와 같은 옹벽을 두른 섬으로 남게 됩니다.
계속해서 1978년에는 선유도에 선유정수장을, 그리고 2000년 선유 정수장 폐쇄후 2002년 선유도 공원으로 탈바꿈을 하게 됩니다...
 


현재의 선유도



사진은 선유도로 넘어가는 선유교에서 바라본 섬의 전경입니다..
우측 끝에는 양화대교가 관통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선유도는 이렇게 해발이라고 표현하기가 무색하게 완전한 저지대 평지가 되버렸습니다.
 

위의 사진은 선유도를 관통하는 양화대교입니다.. 요즘은 강변을 따라 산책로와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선유교를 건너면 출입을 막은 곳에 저렇게 흉물스럽게 전신주 하나가 서있습니다..



선유도 공원에는 이렇게 아이들의 견학장 역할을 합니다..
이 곳에는 단순한 쉼터 뿐만아니라 이전의 정수장 시설을 활용한 생태공원 등 학습을 위한 교육장치가 많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곳곳에 이렇게 정수장 관련 시설이 많이 활용되어 공원을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서울 갤러리...



디자인 서울 갤러리 앞 낙서판... 추측컨대 이 쇠벽도 정수장 시설의 일부인것으로 보입니다...





 

물과 관련된 주제의 시설도 제법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생식물도 전시되어 생태공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습니다..



작은 식물원도 있으나... 여름엔 좀 찜통인듯...

 


선유도 안내센터는 아직은 공사중인듯 보입니다...



예전 선유도 모습을 그린 저선의 "선유봉"이란 수묵화가 선유도 역사에 대한 간략 정말 간략한 설명과 함께 돌에 새겨져있습니다...









선유도에서 바라본 선유교와 영등포구 양화동 방향...

현재의 선유도는 기존의 폐기된 정수장 시설을 최대한 재활용하여 만든 생태공원입니다...
재활용 한다는 측면과 역사적 시설을 활용한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 선유도 생태공원은 2003~2004년 국내외 건축·조경상을 잇달아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아쉬운 점은 과거의 멋진 선유도를 못 본다는 점....

그리고 개인적으로 선유도의 가장 못마땅한 모습은 옹벽으로 둘러싸인 선유도 그 자체입니다....
특히나 섬의 특성상 섬 안에서 주변의 한강변이 훤히 보여야 하는데 수많은 수목에 가로막혀있습니다.. 최대한 한강쪽에 다가가도 역시 옹벽과 수목으로 한강변 경치를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선유도에서 옮겨간 미륵부처를 찾아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한국동란당시에 파괴되버린 용화사에서 마지막 남은 유물인 미륵부처는 현재의 노량진에 있는 극락정사란 절로 옮겨졌습니다...
그렇다면 그 미륵부처는 어떤 모습일까요?
사실 제가 이 포스팅을 쓴 주된 목적이기도 하였고 호기심이 발동되어 찾게된 유물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인터넷 어디를 뒤져보아도 그 미륵부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왜 누군가 미륵부처에 관심을 가진 분이 없었을까요...

그래서 제가 직접 찾아서 그 모습을 담아보기로 결정...

극락정사는 현재의 노량진동의 아파트 숲속에 작은 사찰입니다..
그리 잘 알려진 절도 아니어서 아마도 근처 동네 주민이 아니고서야 모를 것으로 보입니다..

  


극락정사 마당으로 들어가 열심히 미륵부처를 찾아보지만 눈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각 법당안을 맘대로 헤집고 다닐수도 없는 노릇..

다행히 극락정사 관계자분의 도움으로 미륵부처 사진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 분이 선유도 용화사에서 옮겨온 그 미륵부처...

금불상을 예상했는데 석불상입니다...

아쉽게도 미륵부처가 옮겨질 당시 사정을 자세히 아는 분들은 거의 돌아가셨고 다행히 저간의 사정을 비교적 잘 아시는 여성 신도분으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여성 신도분... 어렸을때부터 극락정사를 놀이터삼아 살다시피하며 큰 스님 등으로부터 미륵부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미륵부처가 옮겨질 당시에 살아계셨던 분들이 없기에 어느 정도 전설처럼 구전처럼 전해 내려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알려진 정보대로 미륵부처는 한국전쟁당시 미군에 의해 옮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군이 미륵부처를 발견할 상황입니다.
어두운 한강변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서 무언가 빛이 나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보니 이 미륵부처였다고 합니다..
(추측컨데 달빛 아래 빛나는 미륵부처를 발견한 것이 아닐까싶습니다.)
그후에 미군의 입장에선 그냥 갖다버리거나 방치할 상황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어쩌면 불교신자 또는 불교를 아는 한국인의 요청으로, 아니면 문화재를 존중하는 미군의 이해심으로) 선유도 근처에서 가까운 절을 찾다보니 우선 동작동 국립현충원내에 있는 화장사(현 지장사 또는 호국지장사) 에 안치를 타진했는데 당시 화장사에서는 미륵부처를 모실 상황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화장사를 관리할 스님의 부재등 당시 화장사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던 듯 싶습니다.. 
그래서 미륵부처를 옮겨오게 된 곳이 현재의 노량진동에 있는 극락정사로 적당한 불교의식을 거쳐 모셔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옮겨오기전 선유도 용화사에 있었던 이 미륵부처가의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르면 조선시대, 어쩌면 일제시대에 만들어졌을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여지껏 이 미륵부처에 대해 문화재적 관심을 갖이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작연대를 떠나서 마지막 남은 선유도의 유물일 될지도 모를 극락정사 미륵부처...  
조금이라도 누군가 한강의 과거에 관심있는 역사학도 또는 서울시 문화재 당국이 신경을 써주셨으면 하는 조그만 바람입니다..

글을 마치면서 극락정사 법당내 미륵부처 사진을 흔쾌히 찍게 허락해 주신 극락정사 관계자 여러분 특별히 미륵부처상이 극락정사로 옮겨온 내력에 대해 과일을 대접해 주시며 자세히 설명해 주신 이름모를 여성 신도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료 참고 : 한겨레 신문, 동아 일보, 한강시민공원관리소 사진, 서울시 시의원 김정태님 블로그.. 등>